어제 전국 경매 목록에서 전세사기 물건 176건을 세어 봤습니다. 세고 나니 정작 궁금한 게 남았습니다. 그 물건에 입찰하면 실제로 어떻게 되나.
값이 싸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. 안산 선부동의 한 원룸은 감정가 8,100만 원짜리가 최저 2,778만 원까지 내려와 있습니다. 목록만 보면 손이 갑니다. 그런데 비고란에 한 줄이 붙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.
그 한 줄을 오늘 제대로 읽어 보려고 합니다.
법이 정한 것은 이렇습니다
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제20조입니다.
전세사기피해주택을 「민사집행법」에 따라 경매하는 경우 전세사기피해자는 매각기일까지 「민사집행법」 제113조에 따른 보증을 제공하고 최고매수신고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우선매수하겠다는 신고를 할 수 있다.
문장이 짧은데 안에 든 게 큽니다. 순서대로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[확인필요 — 아래는 제가 조문을 읽고 정리한 것이고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].
| 조건 | 내용 |
| 누가 | 전세사기피해자로 결정된 사람 |
| 언제까지 | 매각기일까지 |
| 무엇을 내고 | 민사집행법 제113조의 보증(보통 최저가의 10%) |
| 얼마에 | 최고매수신고가격과 같은 가격 |
마지막 줄이 핵심입니다. 「같은 가격」입니다. 더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쓴 값을 그대로 가져갑니다.
제가 몇 주 들여 이 집을 살펴보고 값을 정해 법정에 앉았다고 해 봅시다. 그리고 최고가를 썼다고요. 그런데 피해자가 우선매수 신고를 해 두었다면 그 값에 그분이 가져갑니다. 저는 값을 정해 준 사람이 됩니다.
여러 피해자가 동시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법에 있습니다. 특별한 협의가 없으면 변제받을 수 있는 임차보증금의 비율에 따라 나눠 매수하도록 개정됐습니다(제20조 제3항).
그런데 「1회 제한」은 법에 없습니다
여기가 어제 제가 틀렸던 부분입니다.
지난 글에서 안산 도원스위트빌2 비고를 보고 「1회 제한 문구가 보이지 않는다」고 썼습니다. 그 사건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었는데, 전국을 세어 보니 부산 동부지원은 65건 전부에 그 문구를 붙여 놨습니다.
매수인이 전세사기피해자인 경우 우선매수권은 1회에 한함
같은 제도인데 왜 법원마다 다를까. 조문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. 제20조 어디에도 횟수 제한이 없습니다.
그러니까 「1회 제한」은 법이 정한 게 아니라 법원이 그 사건에 붙이는 「특별매각조건」입니다. 붙일 수도 있고 안 붙일 수도 있습니다. 그래서 안산은 없고 부산은 있습니다.
왜 그런 조건을 붙이게 됐을까
이 조건에는 앞선 역사가 있습니다. 공유자 우선매수권입니다.
민사집행법 제140조는 지분이 경매로 나왔을 때 다른 공유자가 최고가와 같은 값에 먼저 살 수 있게 해 뒀습니다. 구조가 전세사기 쪽과 똑같습니다. 그런데 이게 이렇게 쓰이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.
매각기일 전에 우선매수 신고만 해 둔다 → 다른 사람들이 「어차피 밀린다」며 입찰을 안 한다 → 그런데 정작 보증금을 안 낸다 → 유찰된다 → 최저가가 떨어진다 → 값이 충분히 내려가면 그때 진짜로 행사한다
신고 자체가 다른 입찰자를 쪻아내는 도구가 되는 겁니다. 그래서 법원들이 「우선매수 신고는 1회로 제한한다」는 특별매각조건을 붙이고 그 내용을 매각물건명세서 비고란에 공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습니다.
전세사기 쪽 문구가 유독 길고 조건이 붙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. 실제 문구를 보면 그렇습니다.
전세사기피해자가 우선매수권 신고 후 매각기일까지 매수보증금을 미납하여 실효되는 경우에는 이후 매각기일부터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없음
「미납하여 실효되는 경우」라는 말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. 그런 일이 실제로 상정돼 있다는 뜻입니다.
그래서 입찰자에게는 갈림길이 됩니다
정리하면 같은 전세사기 물건이라도 비고에 따라 셈이 달라집니다.
| 비고 | 입찰자 입장에서 |
| 「1회에 한함」이 있다 | 피해자가 한 번 신고했다가 보증금을 안 내면 그 뒤로는 못 한다. 그 다음 기일부터는 경쟁 구도가 정리된다 |
| 아무 제한 문구가 없다 | 매 기일마다 다시 밀릴 수 있다. 값이 아무리 내려가도 마지막에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|
| 「우선매수신고서 제출」 + 날짜 |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서류가 들어간 상태다 |
| 「한국토지주택공사에 양도」 | 권리가 LH로 넘어갔다. 뒤에 따로 적습니다 |
전국 176건을 이 기준으로 갈라 보니 이렇게 나왔습니다.
| 유형 | 건수 |
| 「1회 제한」류 문구가 붙은 것 | 107 |
| LH로 양도된 것 | 38 |
| 「행사할 수 있음」만 있는 것 | 18 |
| 신고서가 이미 제출된 것 | 7 |
| 기타(재매각 병기 등) | 6 |
107건이 제한 문구를 달고 있고, 그 대부분이 부산 동부지원 사건입니다. 안산 도원스위트빌2는 여기 안 들어갑니다.
LH로 넘어간 물건은 경우가 다릅니다
38건이 이 유형입니다. 비고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.
본 건물은 「전세사기피해자주택」으로 피해주택에 대한 우선매수권이 「한국토지주택공사」에게 양도되었음 (전세사기 피해자도 우선매수권 행사가능)
특별법에는 피해자가 매입을 요청하면 우선매수 권리를 공공주택사업자에게 양도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. LH가 매수인 자리에 서고, 살던 사람은 그대로 그 집에 임차인으로 남는 방식입니다 [확인필요 — 세부 절차와 요건은 LH 안내를 확인해야 합니다].
입찰자 입장에서 보면 상대가 개인에서 기관으로 바뀜 것입니다. 괄호 안에 「피해자도 행사 가능」이 붙어 있으니 양쪽 다 열려 있는 셈이고요.
안산 선부동의 두 건물이 여기 해당합니다. 도원스위트빌 1차는 18호실 중 16호실이, 도원스위트빌2는 24호실 중 16호실이 LH로 넘어가 있습니다.
목록에서 이 줄을 어디서 보나
물건비고는 매각물건명세서를 열지 않아도 법원경매정보 목록과 물건상세 화면에서 바로 보입니다. 무료입니다.
다만 목록의 비고가 전부는 아닙니다. 특별매각조건의 정확한 문안과 실효 조건은 매각물건명세서에 적힙니다. 명세서는 매각기일 1~2주 전에 열립니다. 값이 싸 보인다고 그전에 마음을 정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.
사남매아빠의 시선
이 글을 쓰면서 계속 걸린 게 하나 있습니다. 제가 지금 「어떻게 하면 안 밀릴까」를 궁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.
1회 제한이 붙었으면 그 다음 기일을 노리면 되고, 안 붙었으면 피하면 되고 — 그렇게 읽다 보니 어느새 상대편에 서 있더라고요. 그런데 이 조항의 상대편은 살던 집을 잃은 사람입니다. 법이 그 사람에게 「같은 값이면 당신이 먼저」라고 정해 준 것이고요.
그래서 제 결론은 지난번과 같습니다. 이 목록의 물건은 제가 들어갈 자리가 아닙니다. 다만 목록을 읽을 줄은 알아야겠다 싶어 정리해 둑습니다. 넘기다가 이 문구를 만났을 때 「아, 이건 그런 물건이구나」 하고 지나갈 수 있게요.
정리
- 최고가를 써도 같은 값에 밀릴 수 있습니다. 특별법 제20조가 그렇게 정해 놨습니다
- 「1회 제한」은 법이 아니라 법원이 붙이는 조건입니다. 그래서 사건마다 다릅니다
- 그 조건이 생긴 배경은 공유자우선매수권의 악용 사례입니다. 신고만 해 두고 보증금을 안 내는 방식이었습니다
- 목록의 비고로 1차 판단, 확정은 매각물건명세서입니다
전세사기 물건이 지금 전국에 몇 건이고 어디에 몰려 있는지는 앞 글에, 한 건물 43호실이 통째로 나온 사건은 그 앞 글에 적어 둑습니다.
다음에는 LH로 넘어간 38건이 그 뒤 어떻게 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. 9월 17일에 안산 도원스위트빌 1차 18호실의 매각기일이 있어서, 결과를 보고 이어 쓰겠습니다.
※ 이 사건들을 법원에서 직접 확인하려면 — 법원경매정보(courtauction.go.kr) → 경매물건 → 경매사건검색 → 안산지원 / 2024 / 50496 (경매1계) · 안산지원 / 2023 / 60281 (경매10계) · 부산동부지원 / 2023 / 111594 (경매3계) — 법원 선택칸에는 이 이름 그대로 나옵니다
※ 출처: 조문은 「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」 제20조, 공유자 우선매수권은 「민사집행법」 제140조입니다. 물건비고와 사건 수치는 대한민국 법원 법원경매정보(courtauction.go.kr) 2026.09.09 조회분입니다. 공유자우선매수권 악용 사례와 1회 제한 특별매각조건의 배경은 법률신문·학술 논문 등 공개된 자료를 참고했습니다. 제도 설명은 제가 공부하며 정리한 범위이니 개별 사건은 담당 경매계와 전문가에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.
개인 공부 기록이며 투자 판단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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